●미이데라(온조지) 시가현 오쓰시 온조지초 246 

○미이데라와 신라 겐지

 겐지(源氏)와 미이데라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요시는 전9년 전쟁(1051년) 출전 때에 미이데라와 신라명신에 참배하여 무공을 맹세, 그 삼남 요시미츠는 신라명신에서 관례를 하고 신라사부로로 일컬어졌습니다. 요리요시는 전9년 전쟁을 평정한 후, 아들 카이요를 미이데라의 승려로 하여, 미이데라 별원의 비조지 경내에 사당을 짓고, 이와시미즈하치만궁을 권청하여 미이데라의 수호신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하토노오 하치만궁(新八幡宮)입니다. 지금은 비조지, 호토노오 하치만궁 모두 버려진 절이 되어, 오쓰 시립의 장수 공원이 되어 있습니다. 이후에도, 요시미츠가 아들 카쿠요시를 출가시켜, 미이데라 북원에 금광원을 창조하는 등, 겐지에서 미이데라에 많은 승려가 들어와, 그 관계는 더 깊어져 갔습니다.

○미이데라와 겐페이 전쟁

 平治元年(1159) 헤이지 원년(1159년), 다이라노 기요모리와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의 세력 다툼에, 원내신하들의 분쟁이 더하여져 전란이 발발했습니다(헤이지의 난). 이 전쟁에서 기요모리가 승리하고, 요시토모는 사망, 그의 아들 요리토모는 이즈로 유배되고, 겐지는 힘을 잃었습니다.

 헤이지의 난 후, 헤이시는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시라카와법황의 제2 왕자 모치히토왕(1151~1180년)은, 기요모리의 독재를 좋게 여기지 않고 미나모토노 요리마사와 함께 헤이시 타도를 도모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됩니다. 모치히토왕은 미이데라에서 난을 피하고, 요리마사와 합류한 후, 고후쿠지를 의지하여 나라로 향하였습니다만, 도중, 우지뵤도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헤이시의 추격을 받고, 적이 쏜 화살에 맞아 사망합니다. 요리마사는 뵤도인에서 자살했습니다. 현재, 그 장소는 '오우기노 시바'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미이데라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만, 엔랴쿠지의 겐지파 등을 절로 들이고 농성을 하여, 계속해서 헤이시를 위협하였습니다. 헤이시는 이것을 토벌하기 위해 미이데라를 공격하며 불을 질렀습니다. 이 때, 당탑가람은 전부 불타고 말았습니다. “헤이케 이야기”에는 ‘가람은 더욱이 흔적도 없이, 삼밀도장도 없이, 종소리도 들리지 않는, 한 여름 꽃도 없이’라며 그 잔혹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공공 교통기관 : 게이한 이시야마 사카모토선 미이데라역에서 도보 10분/벳쇼역 도보 12분

         JR 도카이도혼선 (비와코선) 도카이도혼선 (비와코선) 오쓰역 →게이한 버스 미이데라 하차 바로

         JR 고세이선고세이선 오쓰쿄역 →게이한 버스 미이데라 하차 바로

   차   : 메이신 오쓰 I.C에서 고간도로 경우 약 10분

         국도 1호선에서 국도 161호선 경우 10분